자녀 교육법

위인을 길러낸 교육법

자식농사 잘 지은 집을 보면 어떻게든 그 비법을 배우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자식을 세계적인 위인으로 길러낸 부모들의 교육법을 들여다본다.

인도의 정치 명문가, 네루의 서신교육

인도에서도 정치 명문가로 꼽히는 집안이 있다. 바로 네루 왕조다. 네루는 간디와 함께 인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초대 총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녀의 딸 인디라 간디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인도 최초 여성총리에 오른다. 그녀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문장력이 뛰어난 경제학자’라는 칭송을 받은데 이어, 영국 BBC가 선정한 ‘위대한 여성 10인’ 중에서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여성 1위로 뽑히기도 했다. 네루가를 이처럼 정치명문가로 키운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서신교육에 있다.

네루와 간디

변호사였던 네루의 아버지는 외동아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 과외 교사를 두고 영어를 가르쳤으며, 아들을 영국으로 유학을 보낸 뒤 편지와 신문 스크랩을 보내주며, 조국에 대한 공부를 잊지 않도록 했다. 아버지의 편지와 신문스크랩을 보며, 네루는 인도의 정치와 비참한 현실을 접할 수 있었고, 정치가의 꿈을 꾸는 원동력이 됐다.

 

네루 또한 마찬가지로 감옥에 투옥된 뒤 홀로 남겨진 딸에게 200톤이 넘는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에는 인도역사와 세계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는데, 이를 통해 딸과 대화하며 지식을 전수한 것이다. 편지에는 인도역사 뿐 아니라 고대그리스시대의 호머와 춘추전국시대의 공자,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과 이론을 담기도 했다. 편지로 역사, 문학, 철학, 다방면에 걸쳐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부모의 지식이 담긴 편지는 아이의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미국의 정치 명문가, 루즈벨트의 독서교육

1936년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루즈벨트 가문은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명문가다.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에 이어 32대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배출했다. 특히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소아마비에 걸린 불운을 딛고 일어선 위인이자, 1936년, 1940년, 1944년까지 무려 네 번 대통령에 오르며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뉴딜정책으로 대공항 시기를 이겨내면서 미국 역사상 링컨 다음으로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대통령으로 손꼽히고 있다. 어떻게 한 집안에서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해낼 수 있었던 걸까? 첫 번째 비결은 독서에 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공통점은 엄청난 독서광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루즈벨트가는 독서를 매우 중요시 해 아이들이 책을 늘 가까이 하도록 힘썼다. 매년 크리스마스트리 밑에는 책이 놓여 있었고, 집안에 아예 도서관을 꾸며놓았다.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영향으로 소년 프랭클린은 늘 서재에 파묻혀 책을 읽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책을 읽을 때 메모를 곁들이기도 했는데, 단순한 지식을 받아들이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견해를 넓히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훌륭한 대통령으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뒤에는 독서가 뒷받침됐다.

미국 갑부, 워린 버핏을 키운 독립심

미국의 두 번째 갑부인 워린버핏. 그는 1956년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전설적인 투자재료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사는 법을 배웠다. 그의 아버지는 주식중개인으로 미국 하원의원까지 지낸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대공항으로 일자리를 잃고, 가족의 끼니조차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린버핏의 아버지는 식료품점을 하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절대 손을 내미는 법이 없었다.

워런버핏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워린버핏도 어릴 적부터 용돈을 스스로 벌어 썼다. 6살 때 콜라 상자를 25센트 주고 사서 한 병에 5센트씩 팔아 1상자 당 5센트의 이윤을 남기기도 했다. 학창시절에는 신문배달을 해서 번 돈으로 11살에 처음으로 주식에 투자했고, 핀볼 게임기를 이발소에 설치에 돈을 벌기도 했다. 워린버핏이 이처럼 장사와 투자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일 수 있었던 건 그의 아버지가 언급했던 독립심에 있었다. 부모라고 자식의 어려운 일들을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준 것이다.

피카소를 천재로 길러낸 부모의 격려

입체주의 창시자이자 20세기 최고 거장으로 손꼽히는 파블로 피카소.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부에는 소질이 없어 늘 놀림을 받곤 했던 피카소. 그는 졸업이 어려울 정도로 학습능력이 저조했다. 그런 그의 놀라운 미술적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미술교사였던 아버지,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였다.

​파블로 피카소

아이에게 정식으로 그림을 가르쳤고, 피카소가 14세가 되던 해. 피카소의 아버지는 입학자격미달이던 아들을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시험관을 따라다니며 설득한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미술학교에 진학한 피카소, 하지만 그 마저도 적응을 못해 그만두고 만다. 어렵사리 입학한 학교에서 낙오한 아들을 다그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피카소의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하며 자심감을 복 돋아준다.

피카소의 어머니 또한 아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피카소는 “만일 네가 군인이었다면 장군이 되었을 것이고, 성직자였다면 교황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격려했던 어머니의 말을 듣고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거장으로 길러낸 독창성 교육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 그의 어린 시절은 지금과 달랐다. 겁도 많았고, 똑똑하지도 않았으며, 유대인이라는 놀림 속에 주눅 들어 외톨이로 지냈던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호기심만은 남달랐던 스티븐 스필버그. 그의 호기심에 불을 붙인 건 그의 어머니, 레아 아들러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어려서부터 영화 찍기를 좋아했던 아들을 위해 작은 필름 카메라를 사주고, 아들의 엉터리 같은 영화에 기꺼이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아들이 촬영을 이유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도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영화편집을 이유로 학교를 쉴 때도 어머니는 아들의 행동을 걱정하기 보다는 항상 따뜻한 말과 격려로 일관했다. 아들이 원하면 그 뜻을 받아들여줬다. 그것이 아들의 독창성을 살리는 길이라 믿은 것이다.

남들처럼 잘하는 것을 바라기보다, 남들과 다르게 하도록 노력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머니. 그녀는 “자녀교육은 마치 자녀와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다. 그러나 반드시 자녀가 리드 하도록 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런 그녀의 남다른 교육방식은 스티븐 스필버그를 평범한 99%가 아니라 자신의 길에서 스스로 빛나는 1%로 키워냈다.

참고도서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 / 최효찬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07.16

 

참고기사

서울신문 / 스필버그 교육법 / 2017.03.22 / 오일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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